영화사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아마 뤼미에르형제일 것이다. 1919년 파리의 한 지하 카페에서 첫 상영이 된 열차의 도착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아마 지금에서 우리가 우주에 사는 외계인을 실시간으로 눈앞에 보고 있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난 영화를 공부하면서 서양영화사 시간이 가장 흥미로웠었는데, 그중에 히치콕 감독에 대한 파트가 아직 가장 뇌리에 남아있다. 히치콕의 이름은 “앨프리드 조지프 히치콕 경”인데 영어로 표기하면 Sir Alfred Joseph Hitchcock이다. 보통 앨프레드 히치콕이라고 불린다. 히치콕은 1899년 8월 13일에 태어나 1980년 4월 29일에 세상을 떠났으며 영국과 미국에서 활동한 영화감독이자 제작자이다. 히치콕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서스펜스’일 정도로 서스펜스 장르의 대가이며 공포영화의 대표 감독이라 할 수 있겠다.
히치콕의 대부분 작품은 죄 없는 사람들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일을 서스펜스 장르로 담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현기증》, 《싸이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이 층》, 《오명》 등이 있는데, 난 와 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 들이닥친 엄청난 새들의 습격으로 인해 초토화돼버리는 마을이라니. 참 인간은 자연 앞에 무능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를 본 이후 지나가는 새 떼라도 만나게 될 때는 그 공포감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영화는 가짜라고 감정이 동요되지 않던 나라 더 의미가 있던 영화가 아닌가 싶다. 또 하나의 영화는 인데, 이건 건너편 건물을 바라보는 내용인데 ‘관음증’이라는 단어를 아마 처음 듣게 되면서 ‘관음증’에 대해 꽤 고민을 깊게 했던 기억이 있다. 결국 우리 인간은 모두가 관음증이란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화가 있고, 그걸 즐길 수밖에 없는 거라며 우리의 파렴치한 욕구를 미화시켰다.
히치콕에 관해 공부하면서 히치콕은 배우를 일개 소품으로만 생각했다는 것이 아주 인상 깊었다. 사실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감독 입장에선 소품에 불과한 게 배우인데, 주객이 전도되어가는 현실이 재밌기도 했었다. 특히 그때엔 배우란 말보단 스타란 말이 더 많이 들리고, 스타들에 대한 소문도 많아서 더 부정적으로 보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요즘엔 배우가 연기도 못하면서 인기로 고개를 빳빳이 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시대겠지. 다행인 건가.
어쩌면 정말 히치콕의 생각대로 ai가 연기하는 시대가 온다면 정말로 일개 소품이 돼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온다면 우리는 어떤 날을 살게 될까.
히치콕에서 ai라니. 에 나오던 새들은 정말 1차원적인 소품이었는데, 지금 다시 본다면 시시하기 그지없겠지. 하지만 또 그 맛이 재밌으니까 조만간 히치콕을 아는 사람들과는 한번 봐야겠다.
스타 감독이었던 히치콕이었지만 대표작들은 아카데미상을 한 번도 받지 못하였고, 《레베카》가 유일하게 작품상을 받았다. 레베카의 시놉시스는 이러하다. 평범하고 수줍음 잘 타는 '나'는 반 호퍼 부인의 말벗 겸 비서로 일하다가, 아내를 잃은 신사 맥심을 만나 본 데 카를 러시아에서 사랑에 빠진다. 맥심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청혼하고, '나'는 아직도 전처 레베카를 잃은 슬픔에 다소 불안정해 보이는 맥심과 결혼 후 그가 소유한 저택 '맨덜리'에 입성한다. 아름답지만 음산하고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저택 ‘맨덜리’는 죽은 레베카가 마치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처럼 레베카에게 깊게 물들어 있다. 집사 댄버스 부인마저 시종일관 무표정함을 유지하며 경계심을 드러내 '나'를 노이로제 상태로 몰아간다. 하지만 남편 맥심은 자신의 심적 고통 때문에 미처 부인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며, 파티에서 일어난 사건을 계기로 그들 부부의 결혼 생활은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비바람 몰아치던 저녁, ‘맨덜리’ 저택의 비밀을 드러낼 사건이 일어난다.
영화 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의 간섭이 너무 심해, 히치콕은 시나리오 작업에 손도 거의 못 댔다고 한다. 그래서 히치콕의 주류 스타일과 다소 다른 스타일의 영화라고 평가받는다. 히치콕의 할리우드 데뷔작이자, 히치콕 스타일이 덜 들어간 영화라서 그의 완숙기인 1950년대 이후에 제작한 걸작들(이 층, 현기증,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사이코, 새)과 비교하면 인지도가 조금 낮다. 그러나 레베카 역시 히치콕의 대표작으로 간주하는 영화 중 하나이며, 당대 아카데미 수상작이다. 감독 색채가 1950년대 작품에 비해 덜 들어갔다는 거지 아예 희미한 것은 아니다. 당장 '나'가 맥심 그 윈터와 반 호퍼 부인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초반부에서 히치콕 특유의 서스펜스 씨는 연출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전설적인 배우 로런스 올리비에가 '맥심 그 윈터', 조앤 폰테인[2]이 '나' 역을 맡았다. '댄버스 부인' 역은 주디스 앤더슨이 담당했다.
뮤지컬 레베카는 영화의 내러티브와 이미지를 많이 참조했다. 그러나 영화는 '나'의 불안과 혼돈 중심으로 흘러가는 원작의 서술을 충실히 옮기려고 노력했지만, 뮤지컬은 극의 중심을 댄버스 부인(이 레베카에게 갖는 집착)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영화와는 큰 차이가 있다.
아직도 인기가 있는지라 홈비디오 출시도 활발하고 4K 복원도 완료된 상태다.
맥심 그 윈터 역의 로런스 올리비에는 연인이었던 비비언 리가 여주인공 역을 맡길 강력히 원했다. 하지만 앨프레드 히치콕은 비비언 리의 이미지가 수줍고 하는 '나' 역할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인지도가 낮은[4] 조앤 폰테인을 여주인공 역에 낙점했다. 이 사실에 불만을 품은 로런스 올리비에는 촬영 내내 조앤 폰테인을 쌀쌀맞게 대했다. 이를 본 히치콕은 연기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해 현장 스태프들에게 일부러 조앤 폰테인에게 쌀쌀맞게 대하라고 지시했다. 이 때문에 조앤 폰테인은 촬영장에서 항상 위축된 상태였고, 혼란스럽고 공포에 질려 허둥대는 '나'의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히치콕은 후에 "비비언 리는 완벽한 레베카입니다. 영화에서는 레베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비비언 리는 영화에 출연할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다만 이것이 비비언 리를 떨어뜨린 가장 큰 이유는 아니고, 실질적으론 비비언 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너무 크다는 문제가 있었다. 비비언 리는 이 영화 발표 전에의 스칼렛 오하라 역을 맡아 미국 전역에 이름을 알린 상태였다. 이미 맥심 역으로 유명 배우인 로런스 올리비아를 뽑은 마당에 비비언 리까지 '나' 역에 기용했다간 영화의 존재감은 죽고 남녀 배우들의 인상만 관객들의 기억에 남을 위험이 높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영화 제작자 셀즈닉의 주장에 따라 최대한 소설 원작에 가깝게 스토리를 풀어갔지만, 몇몇 부분은 원작과 달라졌다. 원작에선 댄버스 부인의 연령대가 꽤 높았으나[5] 댄버스 부인 역에 캐스팅된 사람은 당시 40대의 주디스 랜더스였다. 원작에선 그녀의 과거가 약간 언급되지만, 영화에선 레베카가 맨덜리에 입성할 때 따라 들어왔다는 것 빼고는 과거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원작에 비해 대사량이 많이 줄고 시종일관 포커페이스로 연기하는 주디스 앤더슨 덕분에 댄버스 부인의 미스터리함이 꽤 강조됐다. 당시 강력한 검열국이었던 미국영화협회와의(헤이즈 오피스) 트러블도 있었는데, 레베카와 댄버스 사이의 레즈비언적인 표현이나 암시를 금지했다. 그래도 댄버스 부인의 레베카에 대한 강박적인 기억은 영화에 넣을 수 있었고, 이 절제 때문에 오히려 댄버스 부인의 미스터리함을 강조하는 데 도움이 됐다.
영화 중간에 히치콕이 엑스트라로 깜짝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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